가을 우편함의 빈 봉투 — 짧은 창작 이야기
받는 사람만 적힌 편지아래는 실제 인물이나 사건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짧은 창작 이야기예요. 한 장씩 읽으며, 말이 꼭 빽빽해야 마음이 전해지는지 생각해 봐요. 이야기는 어느 10월 오후의 빈 봉투에서 시작해요.
봉투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서윤은 오래된 책을 정리하다 자기 이름이 적힌 봉투를 발견했다. 우표도 날짜도 없었다. 펼쳐 보니 정말 비어 있었다. 버릴 종이 더미에 올려놓았다가, 이름의 마지막 획이 유난히 조심스러워 보여 다시 집어 들었다.
누가 썼는지 묻지 못했다
가족 대화방에 사진을 보낼까 하다가 멈췄다. 누가 썼는지 알면 아무것도 아닌 봉투가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누군가 대단한 말을 남기려 했다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서윤은 봉투를 책상 한가운데 놓았다.
첫 문장은 생각보다 짧았다
그날 저녁 친구에게서 이번 주가 어땠냐는 메시지가 왔다. 서윤은 평소처럼 ‘그냥’이라고 쓰다가 지웠다. 그리고 ‘오늘 네가 빌려준 책을 드디어 다 읽었어’라고 보냈다. 책의 마지막 장보다 그 한 줄이 더 오래 걸렸다.
빈 곳을 다 채우지는 않았다
서윤은 작은 종이에 그 문장을 적어 봉투에 넣었다. 이어 쓸 말이 두세 개 떠올랐지만 그대로 접었다. 편지는 설명서가 아니었다. 무엇을 했고 왜 늦었는지 전부 증명할 필요는 없었다.
이름 뒤에 남은 여백
다음 날 봉투는 친구의 책 사이에 끼워졌다. 서윤은 앞면의 자기 이름을 지우지 않고, 아래에 친구 이름을 작게 더했다. 빈 봉투는 이제 비어 있지 않았지만 여전히 가벼웠다. 가끔은 다음 사람이 보탤 자리를 남겨 두는 것도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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